"학대 피해 장애인 녹음금지 예외 인정해달라" 2만 4278명 탄원 제출
페이지 정보
본문
주호민 작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사람 목소리 들어달라"
올해 말까지 매일 1시간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인시위
【에이블뉴스 이슬기 기자】"말로 피해를 설명할 수 없는 아이, 누가 어떻게 자신을 대했는지 진술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 기억을 붙잡아 둘 수 없는 치매 노인에게 보호자의 녹음은 법정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입니다.
그 목소리를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지운다면, 가해자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보호받고 피해자는 다시 침묵 속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은 물론 법률가, 인권활동가, 그리고 평범한 시민에 이르기까지 2만 4278여 명이 “스스로 말할 수 없는 피해자의 마지막 목소리를 지켜달라”는 호소에 이름을 보탰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10개 단체로 구성된 제3자 녹음금지 예외적용을 통한 학대 피해 장애인 권리보장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6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2만 4278명의 시민이 참여한 탄원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용인 장애아동 학대사건 계류 중, 법안 발의까지
대책위는 지난 6월 22일 장애인 학대 예방의 날,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차 기자회견을 열어 학대 피해 장애인의 방어권 보장을 촉구한 이후 탄원 서명 운동을 이어왔다.
현재 대법원에는 자폐성 장애아동 학대 의심 상황에서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자녀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교실 내 발언을 녹음한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다투는 사건, 일명 '용인 장애아동 학대 사건'이 계류 중이다.
해당 녹음파일에는 특수교사가 자폐성 장애아동에게 한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너를 얘기하는 거야. 아휴 싫어, 싫어, 죽겠어, 싫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는 발언이 명백히 담겨 있다.
1심 재판부는 자폐성 장애아동이 스스로 학대에 방어하기 어려운 점, 공교육 현장에서 녹음으로 침해되는 사생활의 비밀보다 녹음을 통해 보호할 수 있는 이익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 등을 고려해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고, 해당 발언을 정서적 학대로 봤다.
반면 2심에서는 해당 녹음이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에 위반된다고 보아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부정했고, 그 결과 해당 발언과 정서적 학대 여부는 충분히 판단되지 못한 채 무죄가 선고된 바 있다.
대책위는 "이 사건은 단순히 ‘녹음이 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학대를 당해도 이를 말로 표현하거나 증거를 직접 남길 수 없는 발달장애아동·중증장애인·치매노인에게 보호자의 녹음은 사실상 유일한 피해 입증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1항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같은 법 제4조는 이를 위반해 수집된 증거를 재판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률가 112명은 이미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해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학대 피해를 입기 쉬운 이들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관한 기준을 세우는 중대한 계기”임을 강조하고, 자기방어가 어려운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헌법합치적 해석을 촉구했다.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주요국에서는 학대 피해자가 자기방어가 어려운 경우 제3자 녹음의 증거능력을 사안별로 인정하거나 재량적 심사를 통해 허용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통신비밀보호법·장애인복지법·노인복지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학대피해자의 마지막 방어수단" 2만4278명 탄원
이날 2차 기자회견은 지난 6월에 이어 대법원에 "학대피해자의 마지막 방어수단을 지켜주는 판단을 내려달라"는 목소리와 더불어, 2만4278명의 이름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하는 자리였다.
피해 아동의 아버지인 주호민 웹툰 작가는 "저는 모든 교실에 녹음기를 드리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CCTV도 없고 증인도 없는 곳에서 피해를 설명할 수도, 증거를 남길 수도 없는 사람에게 녹음마저 허용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 질문에 2만4000여 분의 시민들께서 이름을 보태주셨다. 서명을 해주신 것은 이 문제가 한 아이나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말하기 어려운 많은 사람들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이 사건을 통해 대법원이 스스로 권리를 지키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분명한 기준을 세워주시길 바란다"면서 "언젠가는 제 아들이 자기 이야기를 본인의 목소리로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날까지는 제가 대신 말하겠다. 대법원이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들어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강조했다.
조인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도 "장애아동에 대한 학교 내 학대는 발견부터 굉장히 어렵고, 보호자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고 장애아동은 그 일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기 어렵다. 의심이 신고로 이어진다해도 학대로 인정받기는 어렵다"면서 "녹음이 없으면 당시 상황은 교육적 상황이었다고만 설명되고 학대 정황은 은폐되고 축소된다. 피해 아동의 진실이 있다 해도 학대를 증명하기란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통신비밀보호법은 스스로 피해를 막을 수 없는 사람을 대신해서 보호자가 학대 현장을 기록하는 상황을 예정한 법이 아니다. 법이 살피지 못한 공백의 결과를 학대 피해자에게 지울 수 없다"면서 "대법원에서 이번에도 제3자 녹음이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학대를 밝힐 길은 점점 좁아진다. 피해자가 장애로 인해 스스로 피해를 진술하거나 기록하기 어렵고 학대를 의심할 구체적인 정황이 있으며 관리 증거를 확보할 방법이 없는 이러한 경우에는 제3자의 녹음의 증거능력을 예외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책위는 기자회견 이후 오는 7일부터 연말까지 대법원 정문 앞에서 매일 정오부터 1시간 동안 1인시위를 진행할 예정이다. 1인시위는 시민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온라인(https://forms.gle/t3Fw3zJFS4hCFcjP7)으로 가능하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관련링크
-
- 다음글
- "돌봄 대상 아닌 시민으로 인정해달라"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피플퍼스트법 제정' 촉구
- 26.10.0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